[다윈의 블랙박스(마이클 베히/풀빛) 23~29p 중간중간 발췌]
생물학의 약사(略史) 
고대에는 모든 생물학이 블랙박스였다. 왜냐하면 가장 기초적인 차원에서조차 생명치게 어떻게 작동하는지 아무도 몰랐기 때문이다. 고대인은 나무와 동물을 바라보며 그들이 어떻게 움직이는지 궁금했겠지만 그것은 도저히 불가해한 첨단기술의 세계였다. 그들은 정말로 암흑 속에 있었다.

최초의 생물학적 탐구는 사용할 수 있는 단 한가지 방법, 즉 육안으로 시작되었다. 약 기원전 400년경부터 '의술의 아버지' 히포크라테스(Hippocrates)가 썼다고 하는 여러 책에는 일반적인 병의 증상을 설명하면서 병은 신들의 작용이 아니라 음식물과 그밖의 신체적 원인 때문에 발생한다고 적혀 있다.

그리스인 중 가장 위대한 생물학자는 또한 가장 위대한 철학자이기도 한 아리스토텔레스(Aristotle)였다. 아리스토텔레스는 히포크라테스가 아직 살아 있을 때 태어났는데 (그 이전의 거의 모든 사람들과 달리) 자연에 관한 지식은 체계적인 관찰이 필요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2세기경 로마에서 의사로 활동했던 갈레노스(Galen). 그는 심장이 피를 뿜어낸다는 사실을 알아냈지만 단지 눈으로 보는 것만으로는 뿜어낸 피가 몸 전체를 순환하여 심장으로 되돌아온다는 사실은 알아낼 수 없었다.

17세기가 되어서야 윌리엄 하비(William Harvey)라는 영국인이 피는 한 방향으로만 끊임없이 흘러 완전하게 순환한 다음 다시 심장으로 돌아간다는 이론을 도입했다. 관찰할 수 없는 활동을 입증해주는 하비의 논리적인 추론(이는 계산을 간편하게 해주는, 당시에 아직 새로운 것이었던 아라비아 숫자의 도움으로 가능했다)은 전례가 없는 것이었다. 그것은 현대 생물학적 사고의 시작이었다.

인간의 눈은 기껏해야 0.1mm 정도만큼의 작은 물체를 분별할 수 있을 뿐인데 반해 생명활동의 많은 부분은 아주 미세한 미크론 수준에서 이루어진다. 그래서 생물학은 정체상태에 도달했다. 생명체의 큰 구조인 어느 한 블랙박스가 열리면 더 미세한 수준의 블랙박스가 나타났다. 생물학이 계속 발전하기 위해서는 일련의 기술적인 돌파구가 필요했다. 그 첫 번째가 현미경이었다.

 
 
블랙박스 안의 블랙박스 
렌즈는 고대로부터 알려졌고 15세기 이르러 안경에 렌즈를 사용하는 것은 흔한 일이었다. 하지만 17세기가 되어서야 비로소 볼록렌즈와 오목렌즈를 원통형 관에 함께 넣어 최초의 투박한 현미경을 만들었다.

생명의 세포이론은 마티아스 슐라이덴(Matthias Schleiden)과 테오도르 슈반(Theodor Schwann)에 의해 마침내 19세기 초에 제안되었다. 슐라이덴과 슈반이 활동했던 시기는 다윈이 여행을 하고 "종의 기원"을 쓴 1800년대 초부터 중엽까지였다. 그래서 그 시대 다른 모든 과학자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다윈에게도 세포는 블랙박스였다.

19세기 후반, 물리학이 급속히 발전함에 따라 톰슨(J. J. Thomson)은 전자를 발견했고 몇십 년이 지나자 전자 현미경이 발명되었다. 2차 세계대전이 지나자 전자 현미경은 확실히 자리를 잡게 되었다. 20세기 과학자들은 복잡한 세포를 보면서 초기 광학 현미경 사용자들이 곤충의 구조를 보면서 느꼈던 그 경이로움을 다시 느꼈다.

이런 수준의 발견들이 이루어지면서 생물학자들은 가장 중요한 블랙박스에 접근하기 시작했다. 생명은 어떻게 작동하는가라는 질문은 다윈이나 그 동시대인들이 대답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다윈의 블랙박스(마이클 베히/풀빛) 46,47p 발췌]
다윈적 진화론을 무너뜨리는 생화학 
20세기 상반기에는 생물학의 많은 갈래들 사이에 교류가 별로 없었다. 그결과 유전학(genetics), 분류학(systematics), 고생물학(paleontology), 비교해부학(comparative anatomy), 발생학(embryology), 등등의 분야들은 진화가 의미하는 것에 대해 각기 독자적인 견해를 발전시켰다. 필연적으로 진화론은 분야에 따라 다른 의미를 지니기 시작했고 다윈적 진화에 대한 일관된 견해는 사라져갔다. 하지만 20세기 중반에 여러 분야의 리더들이 다윈의 원칙에 기반한 일관성이 있는 진화론으로 자신들의 견해를 결집시키기 위해 여러 학문분야를 망라하는 모임을 연이어 가졌다. 그 결과는 '진화론적 종합'(evolutionary synthesis)이라고 일컬어졌으며 그 이론은 신다윈주의(neo-Darwinism)라고 불렀다. 신다윈주의는 현대 진화사상의 토대이다.

과학의 한 분야는 그 모임에 초대되지 않았는데 그것이 아직 존재하지 않았기 때문에 당연한 일이었다. 현대 생화학은 신다윈주의가 공식적으로 출볌한 후에 비로소 등장했다. 따라서, 미시적인 생명현상이 아주 복잡한 분자영역에서 일어난다는 사실이 발견된 후에 생물학이 재해석되어야 했던 것처럼, 신다윈주의 또한 생화학의 진전에 비추어 다시 고찰되어야 한다. 진화론적 종합을 이룬 과학 분야들은 전부 다 분자를 고려하지 않았다. 그러나 다윈적 진화론이 옳은 것이 되려면 생명의 분자구조를 설명해야 한다.

 
 
[다윈의 블랙박스(마이클 베히/풀빛) 73,74p 발췌]
자전거가 오토바이로 진화할 수 있나 
논점을 명확히 하기 위해서, 다음과 같은 연속물을 생각해보자. 스케이트 보드, 장난감 마차, 자전거, 오토바이, 자동차, 비행기, 제트비행기, 우주왕복선 등등. 이것은 자연스러운 진행처럼 보인다. 왜냐하면, 이것들은 모두 수송에 이용되며 또 복잡한 순서로 나열되어 있기 때문이다. 이것들은 개념적으로 연결되어 하나의 연속선상에 위치할 수 있다. 그러나 예컨대 자전거가 오토바이의 물리적(즉 다윈주의적) 선구체인가? 아니다. 그것은 단지 개념적 선구체일 뿐이다. 역사상 어떤 오토바이도 단지 자전거를 조금씩 단계적으로 변형시켜 만들어진 적이 없었다. 아마도 어느 토요일 오후 한 십대 소년이 낡은 자전거와 낡은 잔디기계의 엔진, 그리고 그밖의 다른 부품 몇 개를 가지고 몇 시간의 노력 끝에 작동하는 오토바이를 만들어내는 경우는 있을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조차도 인간이 환원 불가능한 복잡성을 지니는 시스템을 설계할 수 있다는 사실을 보여줄 따름이다. 다윈의 관점에서 진정한 선구체가 되려면 우리는 반드시 자전거에 '수많은 연속적인 사소한' 변형을 가해 오토바이를 만들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어야 한다.

 

그렇다면 점진적인 돌연변이의 축적에 의해 자전거를 오토바이로 진화시키는 시도를 해보자. 자전거를 만드는 공장에서 가끔 제조과정의 착오가 생기는데 그것이 그 자전거의 성능을 향상시키는 결과로 된다고 가정하자. 그러면 그 돌연변이 자전거를 구입한 고객의 친구들과 이웃들은 그 회사에다 그것과 비슷한 자전거를 만들어 달라고 요구할 것이다. 그래서 그 공장은 그 돌연변이를 하나의 지속적인 특성으로 만들기 위해 라인을 재정비할 것이다. 그러므로, 생물학적 돌연변이와 같이, 이 성공적인 기계적 돌연변이는 재생산되고 퍼져나갈 것이다. 물론, 이 돌연변이는 생물학적 돌연변이와 같이 약간의 사소한 변형이나 중복, 이미 존재하는 구성요소들의 재배치 정도에 해당될 것이며, 반드시 자전거의 기능을 개선시키는 것이어야 한다. 그래서 만약 그 공장이 너트의 크기를 늘리거나 볼트의 직경을 줄이거나 여분의 바퀴를 앞 축에 더하거나 뒷 바퀴의 타이어를 없애거나 페달을 핸들에 붙이거나 해서 아무튼 이 모든 것이 자전거의 성능을 개선시킨다면 그러한 개선점을 고객은 즉각 알아차릴 것이고 그 돌연변이 자전거는 시장을 석권할 것이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 과연 오토바이가 자전거로부터 진화될 수 있을까? 우리는 조금씩 단계적으로 안장을 보다 안락하게 만들거나, 바퀴를 더 크게 만들거나, 전체적인 모양이 다양해지도록 만들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오토바이는 연료가 필요한데 자전거에는 조금씩 변형해서 가솔린 탱크로 만들 수 있는 비슷한 무언가가 없다. 설사 운좋게 옆 공장으로부터 잔디기계의 엔진이 들어온다 하더라도 자전거에 모터를 장착해야 하고 이것을 체인과 정확히 연결해야 한다. 어떻게 이런 일이 자전거 부품을 가지고 단계적으로 이루어질 수 있겠는가? 자전거를 만드는 공장은 돌연변이에 작용하는 자연선택-수많은 연속적이고 사소한 변화-에 의해 오토바이를 생산할 수 없다. 사실 역사상 생산품의 어떤 복잡한 변화도 이런 방식으로 이루어진 적이 없다.

그러므로 자전거는 오토바이의 개념적 선구체는 될 수 있어도 결코 물리적 선구체는 될 수 없다. 그러나 다윈주의적 진화에는 물리적 선구체가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