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설교 일시 : 2003.08.20 / 설교 장소 : 갈보리침례교회 수요기도회

 

우리가 구할 것(눅 12:29-34)

 

제목 : 우리가 구할 것
본문 : "너희는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구하지도 말고 마음에 의심하지도 말라. 이 모든 것은 세상의 민족들이 구하는 것이요, 너희 아버지께서는 너희에게 이런 것이 필요한 줄을 아시느니라. 오히려 너희는 하나님의 나라를 구하라. 그러면 이 모든 것이 너희에게 더하여지리라. 적은 무리야, 두려워 말라. 너희에게 그 왕국을 주시는 것이 너희 아버지의 참된 기쁨이니라. 너희가 가진 것을 팔아서 구제하고, 너희 자신을 위하여 해어지지 않는 돈주머니를 만들라. 고갈되지 아니하는 하늘들의 보물이니, 거기에는 도둑도 접근하지 못하고 좀도 손상시키지 못하느니라. 너희 보물이 있는 곳에 너희 마음도 있느니라"(눅 12:29-34).

오늘 함께 살펴볼 하나님의 말씀은 누가복음 12장입니다. 누가복음 12장 29절부터 34절까지 함께 살펴보겠습니다. (읽는다.) 저는 오늘 "우리가 구할 것"이라는 제목을 가지고 함께 이 말씀을 나누기 원합니다. 잠시 기도하겠습니다.

서론
오늘 읽은 본문 말씀은 우리 모두에게 너무나 잘 알려지고 익숙한 구절입니다. 이 말씀으로 만들어진 찬송가들도 여럿이 있고, 우리가 기도회로 모였을 때 자주 언급되는 구절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정말 이 한 말씀을 붙잡고 실제로 이렇게 살아가는 사람은 찾아보기 힘든 것 같습니다. 오늘 이 주님의 말씀이 우리의 마음을 변화시키고 인생의 푯대를 다시 한번 분명케 해주는 귀한 말씀이 되기를 원합니다.

본론
성령 안에서 누리는 왕국

오늘의 본문 29절에서는 우리에게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구하지도 말고 마음에 의심하지도 말라."고 말씀하십니다. 31절에서는 "오히려 너희는 하나님의 나라를 구하라."고 말씀하십니다. 주님께서 오늘 우리에게 한가지 분명하게 말씀하시는 것이 있습니다. "무엇을 먹을까 마실까를 구하지 말고 오히려 하나님의 나라를 구하라."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니코데모에게 거듭남의 필요성에 대해 말씀하시면서 "사람이 물과 성령으로 태어나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느니라."하셨습니다. 또 다른 성경에서는 "하나님의 나라는 먹고 마시는 것이 아니라 다만 성령 안에서 의와 화평과 기쁨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와 같이 하나님의 나라는 성령님과 아주 밀접한 관계가 있습니다. 우리가 성령으로 다시 태어날 때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또한 우리가 하나님의 나라에 있다는 것은 성령 안에서 의와 화평과 기쁨을 누린다는 말과 동일한 것입니다. 오늘의 본문 앞장에 있는 누가복음 11장 13절에서는 이렇게 말씀합니다. "너희가 악하다 할지라도 너희 자녀에게 좋은 선물을 줄 줄 알거든 하물며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서 구하는 자들에게 성령을 주시지 않겠느냐?"
오늘날 누군가가 오늘 본문의 말씀에 따라 이 생의 먹고 마시는 것을 구하지 않고 하나님의 나라를 구한다면 그는 성령님의 임재와 동행하심과 충만을 구할 것입니다. 그리하면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께서 우리에게 성령을 충만히 주시리라 약속하셨습니다. 우리가 성령으로 충만케 될 때 우리는 하나님의 나라에서, 성령 안에서 의와 화평과 기쁨을 누릴 수 있게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다만 이 땅의 먹고 마시는 것을 구하는 것이 아니라 성령님의 충만한 임재와 하나님의 나라를 구하기 원합니다.

재물에 대한 경고
누가복음 12장은 예수님께서 바리새인들의 누룩, 곧 위선을 조심하라고 경고하시는 것으로 시작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무리 가운데 한 사람이 이렇게 말합니다. 13절을 보시겠습니다.
"그러자 무리 가운데서 한 사람이 주께 말씀드리기를 "선생님, 내 형제에게 말씀하셔서 유산을 나와 함께 나누라 하소서."라고 하니"
이후에 나오는 누가복음 12장의 모든 구절들은 이 말 한마디로 비롯된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이 자에게 "누가 나를 재산 나누는 사람으로 세웠느냐?"고 반문하시며 계속해서 말씀하십니다. 15절에 "주의하고, 탐심을 조심하라. 이는 사람의 생명이 자기가 소유한 것의 풍부함에 있지 않음이라." 주님께서는 우리가 진정으로 구해야할 가장 좋은 것을 말씀하시기 전에, 이것을 경고하고 계십니다. "주의하고, 탐심을 조심하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재물에 대해 경고하고 계십니다.

주님은 이어서 어리석은 부자의 비유를 말씀해 주십니다. 이 비유 역시 오늘의 본문말씀과 같이 너무나 유명해서 아마 우리 중에 모르시는 분이 거의 없을 것입니다. 이 부자는 자신이 여러 해 동안 쓸 물건들을 많이 쌓아두고 이제 편히 쉬고, 먹고, 마시고 즐거워할 것을 계획하였습니다. 그러자 하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20절에 "너 어리석은 자야, 오늘 밤 네 혼을 네게서 앗아가리니 그러면 네가 장만한 그것들이 누구의 것이 되겠느냐?"
우리는 이 비유를 복음을 전할 때 자주 사용합니다. 사람들에게 이 땅의 생이 전부가 아님을 일깨워주기 위해서, 오늘 밤 당신이 죽는다면 이 세상에서 이루어놓은 모든 일이 헛되다는 것을 경고해 주기 위해서 이 구절을 사용합니다. 그러나 오늘 우리는 이 말씀을 우리 자신에게 적용해 보기 원합니다. 우리는 이 어리석은 부자처럼 이 땅에서의 삶을 위해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지는 않습니까? 다만 좀더 안락한 삶, 안정된 삶, 편안한 삶을 추구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나의 먹을 것, 나의 입을 것, 나의 거할 처소, 나의 미래, 나의 즐거움을 위해서 시간을 허비하는 삶을 살고 있지는 않습니까? 주님은 그러한 자들을 향해서 "너 어리석은 자야"라고 경고하십니다. 하나님을 알지 못하고 이 땅의 삶만을 바라보며 사는 죄인들도 어리석은 자이겠지만, 하나님을 알고 영원한 생명을 얻은 그리스도인이 안개와 같이 짧은 이 땅의 삶만을 바라보며 산다면 그것은 얼마나 더욱 비참하고 어리석은 삶이겠습니까?
오늘의 본문은 이러한 흐름 가운데서 나온 말씀입니다. 어리석은 부자의 비유를 말씀하신 주님은 22절부터 구구절절이 탄식하시는 가운데 말씀하고 계십니다. 24절에 "너희는 그 새들보다 얼마나 더 귀하냐?", 26절에 "그러므로 너희는 아주 하찮은 그 일마저도 할 수 없으면서 어찌하여 그 나머지 것들을 염려하느냐?", 28절에 "오 너희 믿음이 적은 자들아, 너희는 얼마나 더 잘 입히시겠느냐?"

"이 모든 것은 세상의 민족들이 구하는 것이요, 너희 아버지께서는 너희에게 이런 것이 필요한 줄을 아시느니라."
오늘날 수많은 하나님의 아들들이 세상의 민족들과 같이, 이방인들과 같이 살아가고 있습니다. 하나님을 아버지라 부르는 수많은 자녀들이 세상 사람들이 걱정하는 것을 걱정하며, 세상 사람들이 구하는 것을 구하고 있습니다. 주님은 이러한 모습을 보시며 오늘도 탄식하고 계십니다. "오 너 어리석은 자야", "오 너희 믿음이 적은 자들아" 오늘 우리가 이 말씀을 대할 때 주님과 같은 마음으로 애통하고 탄식할 수만 있다면 우리에게 길이 있습니다. 이 세상의 민족들과 같이 살아가던 우리의 모습을 주님 앞에 돌이키기 원합니다. 우리에게 필요한 모든 것을 다 아시는 아버지를 가지고 있으면서도 버림받은 자처럼 살아가던 우리의 모습을 돌이키기 원합니다.

우리가 구할 것
주님께서는 우리가 구해야 할 한가지를 분명하게 제시해주고 계십니다.
"오히려 너희는 하나님의 나라를 구하라. 그러면 이 모든 것이 너희에게 더하여지리라. 적은 무리야, 두려워 말라. 너희에게 그 왕국을 주시는 것이 너희 아버지의 참된 기쁨이니라."
우리의 아버지가 되시는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아들들이 된 우리에게 참으로 기쁘게 주시고자 하는 것이 있다면 그것은 바로 "왕국"이라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너희에게 왕국을 주시는 것이 너희 아버지의 참된 기쁨이니라." 아버지는 아들에게 가장 좋은 것을 주고 싶어합니다. 그리고 아들이 그 가장 좋은 것을 구할 때 아버지는 참된 기쁨을 가지게 됩니다. 이 세상의 그 어떤 아버지도 아들이 불량식품을 구하는 것을 기뻐하지 않을 것입니다. 천하고 쓸모 없는 것을 구하기를 기뻐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아들이 가장 좋은 것을 구할 때 아버지는 기뻐하게 됩니다. 여러분,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왕국을 주시기 원하십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주기 원하시기 때문에 그냥 억지로 손에 쥐어주시지는 않습니다. 우리가 원하여야, 그것을 구하여야, 기뻐하며 주시는 것입니다. 우리의 마음 속에는 이 하나님의 왕국을 구하는 마음이 있습니까? 하나님께 간절히 구하며 사모하는 마음이 있습니까? 그러한 사모함이 우리 마음 안에 있기를 원합니다.

저는 앞에서 이 하나님의 나라를 일차적인 의미로써 성령 안에서 누리는 의와 화평과 기쁨이라고 말씀드렸습니다. 그러나 좀더 넓은 의미에서 이 하나님의 왕국은 다만 현재 우리가 영 안에서 누리는 주님과의 교제일 뿐만 아니라 장차 실제로 이 땅에 세워질 왕국에서 다스리고 통치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어지는 문맥에서 주님은 곧바로 주인과 청지기의 비유를 드시며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43,44절을 보시겠습니다. "그의 주인이 와서 그렇게 하고 있는 것을 볼 그 종은 복이 있도다. 내가 너희에게 진실을 말하노니, 주인이 그 사람에게 자기가 가진 모든 것을 다스릴 자로 삼으리라."

"오 너희 어리석은 자들아, 오 너희 믿음이 적은 자들아, 부디 이 땅의 천하고 하찮은 것들을 구하지 말고 영원한 왕국과 통치를 구하라. 내가 진실을 말하노니, 주인이 그 사람에게 자기가 가진 모든 것을 다스릴 자로 삼으리라. 너희에게 그 왕국을 주시는 것이 너희 아버지의 참된 기쁨이니라."
주님은 우리가 무엇을 구해야하는지를 분명하게 제시해주고 계십니다. 우리가 이방인들이었을 때에는 무엇을 먹을까 입을까를 구하는 것이 당연한 일이었겠지만, 지금도 여전히 그러하다면 우리는 이 세상에서 가장 비참하고 어리석은 사람들일 것입니다. 우리의 하늘 아버지께서는 우리가 가장 좋은 것을 구하기를 간절히 원하십니다. 그것은 무엇입니까? 장차 이 땅에 이루어질 하나님의 왕국에서 하나님과 함께 통치하며 다스리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조금만 눈을 들어 이 세상을 한번 바라보고, 우리 자신을 한번 바라보고, 우리 앞에 놓인 인생 길을 바라본다면 우리는 이 세상에서의 안개와 같이 짧고 보잘 것 없는 삶에 소망을 가지지 않을 것입니다. 우리의 인생은 짧고 허무한 것입니다. 여기에 저보다 연장하신 모든 형제님들도 그렇게 고백하실 것입니다. 야곱도 파라오 앞에서 그렇게 고백하였습니다. "내 순례길 세월이 일백삼십 년이니이다. 내 생애의 세월이 짧고 험악하였으나 내 조상들의 순례의 날들, 곧 그들의 생애의 세월에는 미치지 못하였나이다." 130세가 된 야곱조차 "내 생애의 세월이 짧았다"고 말한다면 우리는 어떻겠습니까?
그렇다면 우리가 이 짧고 허무한 삶 속에서 구해야 할 것은 무엇입니까? 세상 사람들에게는 이 땅에서의 인생이 전부인 것처럼 여겨지기 때문에 그들은 무엇을 먹을까 마실까를 염려하며 구하며 수고하며 살아갑니다. 그러나 하늘의 시민권을 가진 우리들은 참되게 구해야할 것이 무엇인지를 알고 있습니다. 그것은 하늘에 속한 것이며, 영원에 속한 것이며, 주님께 속한 것입니다. 우리에게 하나님의 나라를 구하는 마음이 있기를 간절히 원합니다.

왕국을 구하는 자의 삶
그렇다면 하나님의 나라를 구하는 것이란 무엇입니까? 다만 기도할 때마다 “하나님, 하나님의 나라를 주십시오..”하는 것입니까? 우리가 구원을 받을 때에는 “값없이”, “원하기만 하면”, “구하기만 하면” 받을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왕국을 받는 문제는 다릅니다. “하나님, 왕국을 주십시오. 아멘.”했다고 해서 주어지는 선물이 아닌 것입니다. 만약 왕국이 그렇게 주어지는 것이라면 주님께서는 재물에 대한 어떠한 경고도 하실 필요가 없었을 것입니다. 이 세상에서 누릴 것도 다 구하고 왕국도 덤으로 구하라고 하셨을 것입니다. 그러나 주님께서는 둘 중 하나를 구하라고 말씀하십니다. “너희는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를 구하지도 말고 마음에 의심하지도 말라. 오히려 너희는 하나님의 나라를 구하라.” 이와 같은 동일한 말씀이 기록되어있는 마태복음 6장에서도 이러한 말씀이 있습니다. "아무도 두 주인을 섬길 수 없나니, 이는 그가 한 쪽을 미워하고 다른 쪽을 사랑하거나, 한 쪽을 존중하고 다른 쪽을 업신여기기 때문이라. 너희가 하나님과 재물을 동시에 섬길 수 없느니라."

이 말씀은 오늘의 실제적인 필요에 대해서 기도하지 말라는 뜻이 아닙니다. 우리의 마음에서 중심적으로 구해야 할 것이 무엇인가를 제시하는 말씀인 것입니다. 오늘날 누군가가 하나님의 왕국을 구한다면, 그는 재물을 섬기는 것을 포기해야 합니다. 세상을 사랑하는 것을 그만두어야 합니다. 하나님 외에 존중하던 것들을 업신여겨야 합니다. 오늘의 본문 33절에서도 이렇게 말씀합니다.
"너희가 가진 것을 팔아서 구제하고, 너희 자신을 위하여 해어지지 않는 돈주머니를 만들라. 고갈되지 아니하는 하늘들의 보물이니, 거기에는 도둑도 접근하지 못하고 좀도 손상시키지 못하느니라. 너희 보물이 있는 곳에 너희 마음도 있느니라."
우리의 보물을 하늘에 쌓는 유일한 방법, 우리 자신을 진정으로 위하여 해어지지 않는 돈주머니를 만드는 유일한 방법이 있다면 “너희가 가진 것을 팔아서 구제하라”는 말씀입니다. 오늘날 누군가가 하나님의 나라를 구한다면 그는 가진 것을 팔아서 다른 영혼들을 섬길 것입니다. 가진 것을 얼마나 포기하느냐가 바로 하나님의 나라를 얼마나 구하는가가 될 것입니다. 그래서 주님께서는 이 땅에서 많이 버린 자에게 많이 보상하실 것입니다. 왜냐하면 가장 많이 버린 자가 가장 많이 하나님의 나라를 구한 자이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세상에 아무것도 가지고 온 것이 없으며 아무것도 가지고 갈 수 없는 것이 분명하니 우리에게 먹을 것과 입을 것이 있으면 이것들로 만족할 것이니라. 그러나 부유하게 되고자 하는 자들은 유혹과 올무와 여러 가지 어리석고 해로운 정욕에 빠지리니, 이는 사람들로 파멸과 멸망에 빠지게 하는 것이라. 돈을 사랑하는 것이 모든 악의 뿌리니, 이것을 욕심내는 어떤 사람들이 믿음에서 떠나 방황하다가 많은 슬픔으로 자신들을 찔렀도다. 그러나, 오 하나님의 사람인 너는 이것들을 피하라. ...그들이 선을 행하고, 선한 일에 부요하며, 기꺼이 나누어 주고, 아낌없이 베풂으로써, 자신들을 위하여 오는 때를 대비한 좋은 기초를 쌓도록 하라."

이 말씀은 사도바울이 하나님의 사람인 디모데에게 권면한 내용입니다. 사도바울 역시 자신에게 유익하던 모든 것을 배설물과 손실로 여기고 오직 푯대를 향하여 믿음의 경주를 달렸던 사람이었습니다. 이러한 사도바울이 젋은 사역자 디모데에게 경고하고 있습니다. 세상 사람들이 아니라, 믿음을 가지고 있던 어떤 사람들이 재물 때문에 믿음에서 떠나고 방황하다가 많은 슬픔으로 자신들을 찔렀다고 경고하고 있습니다.
무엇이 우리 자신을 진정으로 위하는 삶입니까? 조금 더 좋은 음식, 좋은 옷을 소유하는 것입니까? 조금 더 안락한 삶을 영위하는 것입니까? 결코 그렇지 않습니다. 그것은 마귀의 속임수입니다. 성경은 “너희 자신을 위하여 해어지지 않는 돈주머니를 만들라.”고 말씀하십니다. “자신들을 위하여 오는 때를 대비한 좋은 기초를 쌓도록 하라.”고 말씀하십니다. 오늘날 이 땅에서 잃어버리는 삶을 사는 자들, 정리하는 삶을 사는 자들, 나누어주는 삶을 사는 자들이야말로 진정으로 자신들을 위하는 자들입니다. 주님은 우리를 사랑하시고 진정으로 우리를 위하여 주십니다. 우리를 위하여 생명을 내어놓으신 주님께서 우리를 위하여 한 가지를 오늘 제시해 주고 계십니다. “너희가 가진 것을 팔아서 구제하고, 너희 자신을 위하여 해어지지 않는 돈주머니를 만들라.”

가진 것을 팔아서 구제하고
“너희가 가진 것을 팔아서 구제하라.”는 이 말씀은 일차적으로 우리의 재물을 처리하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 분명합니다. 초대교회 성도들이 자신들의 재산을 다 내어놓고 가난한 성도들과 모두 함께 사용한 것처럼, 구제하는 일을 위하여 일곱 집사를 세운 것처럼 구제하는 일은 매우 중요합니다. 그러나 이 말씀은 다만 이 세상의 자원봉사단체들이나 불우이웃돕기를 하는 단체들과 같이 행하라는 의미는 아닐 것입니다. 자선사업가들과 같이 계속하여 열심히 돈을 벌어서 그것으로 다른 사람들을 도우라는 말씀이 아닙니다. 우리에게는 그러한 시간이 없습니다. 이 말씀은 현재 우리가 가진 무거운 것들을 모두 처리하고 주님을 전폭적으로 따르라는 말씀입니다. 우리는 이 말씀에 완전히 순종한 한 사람을 사도행전에서 발견할 수 있습니다.
"쿠프로 태생의 레위인 요세라는 사람이 있었는데 사도들은 그를 바나바라고 부르니 (이를 해석하면 ‘위로의 아들’이라.) 그에게는 토지가 있어 그것을 팔아 그 대금을 사도들의 발 앞에 가져다 놓더라."
바나바라는 한 사람이 있었는데, 그는 참으로 하나님의 나라를 구하는 사람이었습니다. 그가 가진 토지를 팔아서 예루살렘 교회가 구제하는 일에 사용할 수 있도록 사도들의 발 앞에 가져다 놓았다고 성경은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나서 바나바는 어떻게 하였습니까? 다시 돈을 벌러 떠났습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사도행전 4장에서 자신의 토지를 팔아 사도들의 발 앞에 가져다 놓은 바나바는 사도행전 13장에서 이렇게 언급되고 있습니다. "성령께서 말씀하시기를 “내가 불러 시키는 일을 위하여 바나바와 사울을 내게 따로 구별해 놓으라.” 하시니라."

하나님의 나라를 구하여 가진 것을 팔아 구제하라는 말씀을 온전히 순종한 바나바에게 주님께서는 놀라운 섬김의 기회를 부여해 주셨습니다. “바나바와 사울을 내게 따로 구별해 놓으라.” 하나님께 따로 구별된 사람이 된 것입니다. 마치 레위인들이 오직 성막에서 주님을 섬기기 위하여 따로 구별된 것처럼, 바나바와 사울은 주님의 사역을 위하여 따로 구별되는 은혜를 입은 것입니다. 주님은 구하는 자에게 주시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오늘날 하나님의 나라를 구하는 자는 이생의 일들에 얽매일 수 없습니다. 오직 자신을 군사로 뽑은 자를 기쁘게 하려 할 것입니다.

베드로는 이렇게 고백하였습니다. “보소서, 우리는 모든 것을 버려 두고 주님을 따랐나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무엇을 갖게 되겠나이까?”(마 19:27) 오직 주님을 따르기 위하여 모든 것을 버려 둔 베드로의 이 고백은 참으로 놀랍습니다. 베드로는 주님 앞에서 담대하게 “보십시오. 우리는 모든 것을 버려 두고 주님을 따랐습니다.”라고 고백할 수 있었습니다. 오늘 우리도 이렇게 고백할 수 있습니까? “주여! 보십시오. 우리도 모든 것을 버려 두고 주님을 따랐습니다.”라고 말할 수 있겠습니까? 주님은 이러한 베드로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진실로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나를 따르는 너희들은 인자가 자기 영광의 보좌에 앉을 새 세대에, 너희도 열두 보좌에 앉아 이스라엘 열두 지파를 심판하리라.”
우리가 만약 이 세상에서의 안락과 재물을 모두 버려 두고 오직 주님을 따른다면 주님께서는 진실로 우리에게 말씀하시거니와, 인자가 영광의 보좌에 앉을 새 세대에, 장차 이 땅에 임할 왕국에서 우리에게 심판과 통치와 다스리는 놀라운 권세를 주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오늘날 우리의 믿음의 길에 실제가 있기를 원합니다. “주여, 다 버리고 따르기 원합니다.”라는 고백은 이제 족한 것 같습니다. 이제는 “보소서, 주여 우리는 모든 것을 버렸나이다.”라고 말할 수 있기를 원합니다. “주님 외에 모든 것을 다 배설물로 여겼나이다. 우리에게 유익한 모든 것을 이제는 다 손실로 여기나이다. 나의 명예, 나의 장래, 나의 재물, 나의 야망, 나의 자랑... 이 모든 것은 세상의 민족들이 구하는 것이니이다. 오, 주여! 우리는 오직 주님 자신을 얻기 원하며, 하나님의 왕국을 구하나이다.”라고 고백할 수 있기를 원합니다.

결론
적은 무리야, 두려워 말라.

저는 이 한번뿐인 인생을 참으로 주님께 드리기 원합니다. 그렇지 않다면 저의 인생은 정말 허무하고 비참할 것입니다. 그러나 실제로 이 길을 따르려고 할 때 저의 장래와 경제적인 압박에 대한 두려움이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육신을 입고 있는 사람이라면, 실제적으로 이 길을 가려고 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이러한 주저함과 두려움을 가지게 될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의 본문 32절을 보십시오. 주님은 이 모든 말씀을 하시면서 사랑어린 음성으로 말씀하십니다. "적은 무리야, 두려워 말라. 너희에게 그 왕국을 주시는 것이 너희 아버지의 참된 기쁨이니라." “적은 무리야, 두려워 말라.” 이 말씀은 한 사람, 개인에게 하시는 것이 아니라 “적은 무리”에게 하시는 말씀입니다. 두려워하고 있는 작고 연약한 무리에게 하시는 말씀입니다. “적은 무리야, 두려워 말라.” 꼭 우리교회에게 하시는 말씀 같습니다. 여러분, 이 주님의 음성을 들어보십시오. “적은 무리야, 두려워 말라. 너희에게 그 왕국을 주시는 것이 너희 아버지의 참된 기쁨이니라.”

우리가 모든 것을 버리고 주님을 따르는 길에는 우리의 부단한 결단과 헌신도 필요하겠지만, 다만 그것으로 되지는 않습니다. 우리가 오직 하나님의 나라를 구하며 주님을 따를 수 있는 것은 계속해서 사랑어린 음성으로 우리에게 위로하시는 주님께서 곁에 계시기 때문입니다. “적은 무리야, 두려워 말라.” 우리는 적은 무리로 모였습니다. 나 혼자 다 버리고 주님을 따르는 것이 아니라, 주님의 놀라운 왕국과 영광을 사모하며 함께 따르고자 하는 동료들, 지체들이 있습니다. 이러한 축복 속에 우리는 한 걸음 한 걸음 이 길을 걸어갈 수 있는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31,32절 말씀을 함께 읽고 마치겠습니다.
"오히려 너희는 하나님의 나라를 구하라. 그러면 이 모든 것이 너희에게 더하여지리라. 적은 무리야, 두려워 말라. 너희에게 그 왕국을 주시는 것이 너희 아버지의 참된 기쁨이니라."
주님이 우리 모두를 축복하시기 원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