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가지 아는 것(요 9:25)

2010년 5월 14일 PM 101 설교학 과제 : 이승선

 

 

토기장이 

요한복음 9장에 나오는 소경은 태어날 때부터 소경으로 태어났습니다. 사람들은 그를 보며 그의 부모가 죄를 지었는지, 그 자신이 죄를 지었는지 궁금해 하였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이 사람이나 그의 부모나 죄를 짓지 아니하였으며 다만 이것은 그에게서 하나님의 일들을 나타내고자 함"이라고 대답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영광을 위하여 이 사람을 이렇게 창조하신 것입니다.

 

"그러나, 오 주여, 이제 주는 우리의 아버지시니이다. 우리는 진흙이요, 주는 우리의 토기장이시오니 우리는 다 주의 손으로 지으신 것이니이다"(사 64:8).

 

하나님은 우리의 토기장이이심으로 우리를 마음껏 만들 권한을 가지고 계십니다. 누구를 건강하게 만들고, 누구를 약하게 만드는지는 하나님의 손 안에 있습니다. 우리가 건강하게 태어난 것은 당연한 우리의 권리가 아니며 토기장이의 권한으로 긍휼을 베푸신 것입니다. 또 우리가 약하게 태어났다면 그 역시도 우리의 삶 속에서 하나님께서 계획하신 일들이 있기 때문입니다. 모든 것은 토기장이의 권한 하에 있습니다. 우리가 어떤 모습으로 어떻게 만들어졌든지 우리는 감히 토기장이를 선하거나 악하다고 평가할 수 없습니다.

 

"아니라, 오 사람아, 네가 누구이기에 하나님께 대꾸하느냐? 지어진 것이 자기를 지은 이에게 말하기를, 어찌하여 나를 이렇게 만들었소, 하겠느냐? 토기장이에게 같은 진흙 덩어리로 한 그릇을 만들어 존귀에 이르게 하고 다른 하나를 수치에 이르게 할 권한이 없겠느냐?"(롬 9:20,21).

 

하나님은 토기장이시며 충분히 자유롭게 자신의 목적에 따라 사람을 창조한 권한을 가지고 계십니다. 여기 요한복음 9장에 나오는 소경은 바로 하나님의 일들을 나타내기 위한 목적으로 그렇게 창조되었습니다.

 

여기서 예수님께서는 다른 병자들을 고치신 것처럼 말씀으로 고치지 않으시고 특별히 진흙을 이겨 소경의 눈에 바르시고 실로암에 가서 씻게 하십니다. 이는 예수님께서 바로 토기장이 창조주 하나님이심을 보여주시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바로 온 세상을 창조하신 토기장이이십니다!

 

 

많이 아는 바리새인들

성경을 많이 알고, 하나님에 대해 많이 알아서 이스라엘의 선생이며 지도자였던 바리새인들은 예수님을 비난하였습니다. "이 사람은 안식일을 지키지 아니한즉 하나님께로부터 오지 아니하였도다"(요 9:16). 하나님께서 정하신 안식일의 참 의미는 사람을 속박하는 것이 아니라 결박으로부터 풀어주는 것이었습니다. 안식일은 사람을 가두는 것이 아니라 자유케 하고 쉬게 하는 것이었습니다. 태어날 때부터 눈먼 자에게 참 안식은 무엇일까요? 바로 그의 눈으로 보는 것입니다.

 

"나는 긍휼을 원하고 희생물을 원치 아니하며 번제헌물보다 하나님 아는 것을 더 원하였으나"(호 6:6).

하나님께서는 바리새인들이 하나님 자신을 알기를 원하셨습니다. 진정 하나님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알려주기 원하셨습니다. 그러나 바리새인들은 자신들이 세워놓은 규칙과 전통에 얽매여 하나님의 말씀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날 때부터 소경인 자를 긍휼히 여기며, 눈을 뜨고 보게 된 것을 함께 기뻐하기는 커녕 어떻게 낫게 되었는지만 계속해서 묻고 토론하며 논쟁하고 있습니다. 사랑과 긍휼이 떠난 메마른 마음에서는 아무런 지혜도 찾아볼 수 없고, 오직 어리석은 논쟁만 계속 만들어낼 뿐입니다.

 

오늘날 많은 똑똑한 사람들이 옳고 그름을 따지고, 누가 맞는지 틀리는지를 가려내려고 합니다. 수많은 성경 지식을 동원하며 기준을 제시합니다. 그러나 정작 하나님께서 무엇을 원하시는지는 안중에도 없습니다. 무엇이 영혼을 살리는 길이며, 무엇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지 상관하지 않습니다.

 

 

한 가지 아는 자

날 때부터 소경이었던 사람은 많은 것을 알지 못했습니다. 그는 볼 수 없었기 때문에 글도 제대로 배우지 못했을 것입니다. 그는 이제 겨우 눈을 떠서 모든 것을 처음 바라보았을 것입니다. 보이는 모든 것이 신기하고 새로웠을 것입니다. 그는 오직 한 가지를 알았습니다.

 

"그가 죄인인지 아닌지 나는 알지 못하며 한 가지 아는 것은 내가 눈멀었으나 지금은 보는 것이니이다"(요 9:25).

"이 사람이 하나님께로부터 오지 아니하였으면 아무 일도 할 수 없었으리이다"(요 9:33).

 

믿음은 단순한 것입니다. 복잡하고 깊은 진리들을 많이 안다고 믿음이 좋은 것이 아닙니다. 믿음은 너무나 쉽고 간단한 것입니다. 오늘날 사람들은 너무 많이 알아서 문제입니다. 라오디게아 사람들의 교회처럼 가진 것이 너무 많고 너무 부유해서 문제입니다. 실상은 가난하고 헐벗고 눈 멀었지만 자신들이 많은 것을 알고 가졌고 누리고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자기 자신의 모습은 못 보고 다른 사람들만 비난하는 것입니다. 바리새인들은 오히려 이 소경에게 욕을 하며 쫓아낸 것을 볼 수 있습니다(요 9:28,34).

 

 

누가 눈 멀었나? 

"예수님께서 이르시되, 내가 심판하려고 이 세상에 왔으니 이것은 보지 못하는 자들은 보게 하고 보는 자들은 눈멀게 하려 함이라"(요 9:39). 

 

우리가 오늘 볼 수 있는 것은 우리에게 눈이 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사실은 빛이 있기 때문입니다. 어두운 곳에서는 아무리 눈을 크게 떠도 보이지 않습니다. 그러나 빛이 있을 때 우리는 볼 수 있습니다.

 

"내가 세상에 있는 동안에는 세상의 빛이로다"(요 9:5). 

 

예수님이 바로 세상의 빛이십니다. 예수님은 어떤 분입니까? 우리에게 참 안식을 주시는 안식일의 주인이시요, 긍휼의 하나님이십니다. 주님은 토기장이로서 이 사람을 날 때부터 소경으로 태어나게 하셨지만, 이제 직접 그의 인생에 방문하심으로써 자신이 참 하나님이심과 참 빛이심을 직접 알려 주셨습니다. 그의 인생은 비참하고 저주받은 것 같았지만, 이제 영원한 생명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반면 본다고 말하고, 많은 것을 안다고 말했던 바리새인들은 어떠했습니까? 그들은 완전히 눈 멀었고, 완전히 어리석은 길을 가고 있었습니다.

 

빛은 책상에서 얻는 것이 아닙니다. 빛은 연구해서 얻지 못합니다. 빛은 예수님을 만날 때 받을 수 있습니다. 오늘날 사탄은 지식의 홍수를 만들어서 예수 그리스도의 영광스러운 복음의 광채를 막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에게 필요한 한 가지 빛은 살아계신 주 예수님이십니다. 사랑과 긍휼을 원하시는 참 하나님, 참 토기장이, 참 안식일의 주인이 우리에게 필요합니다.

 

오직 주 예수님과 날마다 동행하는 사람은 무식한 것 같고, 단순한 것 같으나, 가장 밝히 보며 바른 길을 걸어갈 수 있습니다. 매순간 주님과 동행하기 원합니다.